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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 연표

고 김영수 목사

1946 — 1984
아래로 걸어 내려가며 만납니다
1946 · 6 · 18

목포양동교회, 4대째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나다

부친 김재용 장로 · 모친 박영요 권사의 장남
1965 — 1966

목포고 졸업, 고려대 상과대학 경영학과 입학

교모를 쓴 고등학생 김영수의 졸업앨범 인물사진.
목포고등학교 졸업앨범 · 1965년
1967 · 9

해군 입대

신병 133기 · 백령도 복무 · 병장 제대
해군 신병 133기 단체 기념사진. 흰 정복을 입은 신병 수백 명이 계단에 늘어서 있다.
해군 신병 133기 · 1967년 9월
1972

전남 영암여자중학교 교사

한옥 마당에 교복 입은 여학생들과 둘러앉은 젊은 교사 김영수.
영암여자중학교 학생들과 · 1972년
1973

고려대 복학, 기독학생회 회장. KSCF 활동

KSCF에서 기독학생운동을 하며 성북경찰서에 연행되기도 했다. 같은 해 장로회신학대학에 편입한다.
'축 KSCF 전국대회장' 현수막 아래 나란히 선 청년 세 사람.
KSCF 전국대회 · 1972년
1977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무역회사 범양전용선 입사

얼마 지나지 않아 신학대학에 가겠다고 했다. 대학 후배는 훗날 이렇게 적었다 — 「당연히 좋은 직장을 얻어서 편히 사실 수 있는데, 어려운 목회의 길을 택하신 것을 보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김상대, 5·18 보상 신청 청원서 · 2023
회사 통근버스 앞에 정장 차림으로 늘어선 범양전용선 사원들.
범양전용선 사원들과 · 1976년 11월
1978

감리교신학대학교 학사편입

학사모와 학위복 차림의 김영수 졸업앨범 인물사진.
감리교신학대학교 졸업앨범 · 1980년
1978 — 1979

동대문교회 야학 재건중학교 교감

평화시장 미성년 노동자들을 위한 야학
평화시장의 미성년 노동자들이 밤에 모여 공부하던 야학이다. 부임 시기는 자료마다 1978년 초와 1979년으로 갈리고, 1979년 11월에 그만두었다.
재건중학교 졸업기념 단체사진. 교복 입은 학생들과 교사진이 건물 계단에 모여 있다.
동대문 재건중학교 8회 졸업기념 · 1979년 2월 19일
1978

감신대 산업선교회 활동

동대문 피복 노조
노동자들의 권리 증진을 위한 사회선교에 깊이 참여했다.
1980 · 1 — 2

강화 창후교회 개척. 감신대 졸업

강화군 창후감리교회
감신대를 졸업하고 그해 1월 1일 개척 담임전도사로 부임했다. 넉 달 뒤 광주에서 사람들이 죽었다.
초가지붕 앞에 선 김영수 목사와 마을 아이들 서른여 명.
강화 창후교회 개척 무렵
1980 · 6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강화에 전하다

광주의 증인
6월 2일 김의기 열사의 빈소에서 뿌려진 유인물이 야학 사무실로 전해졌다. 강화로 가져가 등사기로 밀었고, 6월 15일 밤 홍의교회 순회철야기도회에서 청년들에게 낭독하고 나눠 주었다.
「동포에게 드리는 글」 유인물 원본. 손글씨로 '피를 부르는 미친 군화발 소리가 우리가 고요히 잠드려는 우리의 안방에까지 스며들어'로 시작한다.
「동포에게 드리는 글」 원본 · 1980년 5월 30일 김의기
소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980 · 7

계엄법 위반죄로 안양교도소 수감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 독방
군사법정 최후진술은 이렇게 남아 있다 — 「나는 감리교 전도사로서,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신군부세력에 의해 무차별적인 살상으로 죽임을 당한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 할 책임이 있다. 나는 내가 할 일을 했을 뿐이다」아내 남영숙이 적어 둔 최후진술갇힌 날이 꼭 마흔 날이었다고, 뒷날 스스로 세어 말했다. 이 수감 기록은 2007년 명예회복과 2024년 5·18 민주유공자 인정의 근거가 된다.
'수도군단계엄보통군법회의'라 붓으로 쓴 판결문 표지. 재판장·법무사·심판관 서명과 붉은 관인이 찍혀 있다.
수도군단계엄보통군법회의 판결문 · 1980년 8월 19일
1981 · 3 · 21

결혼

인천 내리교회
예식장 단상에 선 신랑 김영수와 신부 남영숙, 뒤에 주례 목사.
인천 내리교회 · 1981년 3월
1982

첫 딸 수진 태어나다. 서탄교회 부임

2월 7일 · 4월 9일
야산 풀밭에 모여 앉은 서탄교회 아이들과 교인들, 오른쪽 아래에 김영수.
서탄교회 교인들과 · 1982년
1983 · 3 · 18

기독교대한감리회 목사안수

중부연회 매산교회
서른일곱에 목사가 되었다. 목사로 산 시간은 열두 달이 되지 않는다.
목사 가운을 입고 꽃다발을 든 김영수 목사, 곁에 한복 차림의 아내가 어린 딸을 안고 서 있다.
안수 후, 아내와 첫 딸과 함께 · 1983년 3월
1983 · 7 · 1

둘째 딸 유진 태어나다

어머니 품에 안긴 갓난아기와, 그 아기에게 뺨을 맞대고 있는 언니.
두 딸 수진과 유진 · 1983년
1983 · 10

급성백혈병 진단

수감생활과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
안양교도소에서 양심수로 분류되어 독방에 갇혔고, 면회조차 되지 않았다. 석방 뒤에도 감시는 그치지 않았다. 고문의 후유증과 끊이지 않는 감시,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건강이 무너져 갔다.
1983 · 12 — 1984 · 1

필리핀 원주민 선교사 인준

기독교대한감리회 선교국
뉴기니아 선교사로 피임되어 있던 것을 필리핀 원주민 선교사로 바꾸어 인준한다는 공문이 온다. 백혈병 진단을 받은 지 두 달 뒤였다. 「필리핀 선교지에 파송받기까지 준비 사항을 추후 다시 연락 드리겠읍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선교국 공문 · 1983년 12월 27일 파송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석 달 뒤에 세상을 떠났다.
기독교대한감리회본부 선교국이 김영수 목사에게 보낸 1983년 12월 27일자 공문. 제목은 필리핀 원주민 선교사 인준 통보, 선교국 총무 직인이 찍혀 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선교국 공문 · 1983년 12월 27일
1984 · 3 · 17

소천

명동성모병원 · 향년 38세
빈소에 놓인 영정과 국화 조화. 근조 리본에 동대문교회, 고려대학교 기독교우회, 서탄교회가 적혀 있다.
빈소 · 1984년 3월
조화 리본에 동대문교회 · 고려대 기독교우회 · 서탄교회
四十一
끊어진 듯 보이나, 끊어지지 않은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로마서 8 : 24 — 25

2007 · 6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

접수번호 보상심의위 제11873호
민주화운동관련자 인정 통지서. '귀하의 명예회복 신청에 대하여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함을 알려드립니다'라고 적혀 있고 위원회 직인이 찍혀 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인정 통지서 · 2007년 6월
2024 · 3 · 17

40주기 추도식

종로5가 기독교회관 조에홀
고 김영수 목사 40주기 추모기도회 포스터. '가난의 영성 · 실천의 목회'라는 문구와 흑백 초상이 실려 있다.
40주기 추모기도회 자보 · 2024년 3월
2024 · 11 · 25

5·18 민주유공자로 인정

제24-20-00782호 · 국가보훈부
5·18 민주유공자 증서.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하여 민주주의와 인권 발전에 기여하였으므로 그 명예를 기린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5·18 민주유공자 증서 · 2024년 11월
2025 · 3 · 17

국립 5·18 민주묘지 안장

평생 그리워하던 동지들 곁으로
소천한 지 41년 되는 바로 그날, 광주로 옮겨졌다.
41주기 안장예식 웹자보. 김영수 목사의 흑백 초상 옆에 '십자가의 흔적을 몸으로 살아낸 사람, 동지들 곁에 영면하다'라고 적혀 있다.
안장예식 자보 · 2025년 3월 17일
“십자가의 흔적을 몸으로 살아낸 사람, 동지들 곁에 영면하다”
2026 · 3 · 17

42주기 추모기도회

국립 5·18 민주묘지 제2묘역 · 해마다 이어지는 중
42주기 추모기도회 웹자보. 푸른 바탕에 '김영수목사 42주기 추모기도회'라는 제목과 초상, 그의 1983년 설교 인용이 실려 있다.
42주기 추모기도회 자보 · 2026년 3월 17일
2026 · 5 · 18

강화 추모예배 — 그날을 다시 듣다

강화 남산교회 ·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강화의 김영수
1부 추모기도회 · 2부 「이제야 김영수를 부른다」 · 3부 다과·친교. 인천교회협의회 강화모임 · 강화 시민회의 · 고난받는이들함께하는모임이 함께 열었다.
강화 추모예배 포스터. 어두운 바탕에 '그날을 다시 듣다 ·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강화의 김영수 목사', 2026년 5월 18일 강화 남산교회, 1983년 김영수 목사의 설교 인용이 실려 있다.
강화 추모예배 자보 · 2026년 5월 18일
“하나님의 정의와 평등과 자유와 사랑이 실현되는 나라이다” — 1983.5.15 설교 中